나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1989년에 공 병우 박사님(1995년 3월 7일 작고)을 도와 한글문화원 연구원 신분으로 세벌식 글자판 연구와 보급 운동을 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 사람이라도 더 공 박사님의 뜻에 동참할 사람을 갈망하던 때였으므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무척 반가웠고, 자연히 진취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남짓 후, 이 찬진 사장님의 요청으로 (주)한글과컴퓨터를 설립하는 일을 맡으면서, 아래아 한글 1.5판 개발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한글문화원에 이어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IT 업계 사람이 되었고, 공전의 히트를 친 아래아 한글 개발팀을 이끄는 나의 업무는 언론과 만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96년 한컴에서의 5년을 정리하고 한컴의 동료 개발이사 함께 나와, 공동으로 설립한 (주)나모 인터랙티브에서는 언론 접촉이 더더욱 불가피했다. 이사나 부사장 역할만 맡으려고 버티다 2년쯤 후에 결국 대표직을 떠맡으면서 회사의 존립과 우리가 개발한 제품의 성공을 위하여 언론과의 인터뷰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품의 성공을 위해 조금이라도 홍보 활동을 해야 했으므로…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나 스스로도 생각의 정리가 되는 반대급부도 있었고, 그 사이에 분에 넘치는 성취도 얻었었지만, 남들 앞에 공공연히 나서는 일에 대한 부끄러움은 마음 속에 점점 쌓여갔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내가 타고난 성향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갔을 때, 첫번째 조회 시간에 교무주임 선생님이 다짜고짜 전교생 앞에서 학생 대표로 구령을 붙여 지휘하는 일을 내게 맡기셨다. 수줍음도 많았지만, 도무지 내키지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때 그 역할을 받아들였다면 내 삶이 좀더 일찍 바뀌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 미련 때문이었는지 대학 2학년 때 부산대학교 국어운동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아 활동한 적이 있다. 3학년 1학기 때는 과 대표를 맡아 활동해 보았다. 해 본 결과는 그다지 스스로 흡족하지 않았다. 공립학교 국어 교사로 발령 받아서 3년 근무해 봤지만, 좋은 교사로 근무하지 못한 것 같다.
수기사 90m 무반동총 사수로 병장 계급장 달고 열두달 지내면서(아! 맹호부대 27개월…) 자체 사격 요령 교범을 간단히 만들기도 했다. 그때와 한글문화원 생활, 소프트웨어 업계로 와서 개발 업무에 밤을 지새우던 때가 내가 가장 신나게 일했던 시기였다. 한 가지 부족했다면, 가족들과의 시간을 목표 성공 후로 미루어 놓았던 점이다. 이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서 할 일도, 그 동안 마음의 빚으로 안고 있던 한글문화원의 세벌식 홍보와 보급 운동 일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세벌식 한손 글자판을 보급하는 일이 올해의 내 목표다. 그러다 보면 또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올지 모르지만, 애초에 고안한 분이 있고, 개발해 준 이도 있을 것이고, 한글문화원 원장님도 계시므로, 내가 인터뷰에 응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 이외에도 건강과 행복을 나누는 운동을 함께 하겠지만,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인터넷에도 오르고 언론 인터뷰 요청도 받을지 모르지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나가고자 할 뿐이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 받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좋은 일도 남 앞에 나서게 되면 엉뚱한 오해를 사는 것도 원치 않는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고 함께 하는 모두가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누가 뭐라고 한들, 나의 타고난 천성을 어떻게 하겠는가?
앞으로 일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더 이상은 성공을 위하여 언론과 인터뷰하는 일은 삼가고 싶다. 내가 언론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더는 맡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하는 일을 남들이 전해서 알려지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내가 직접 언론을 만나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행복하게 열심히 잘 살고 있는데, 괜히 나서서 엉뚱한 곳으로 끌어내려 하지 말아 주시기를 미리 부탁드린다. 내 일에 관심도 없는 사람의 관심까지 받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겸손하게 사는 것이 편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혹시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이가 있다면, 지금의 이 글로써 미리 양해를 구해 두고자 한다. (혹시라도 남들이 성공하지 못한 일에 도전하여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 실현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내 일을 즐길 것이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목표와 현실을 나누면서 살 것이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 못지 않게 오늘 이 순간들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넉넉함보다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미래에 다시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것부터 실천할 것이다.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보잘 것 없는 크기로라도 지금 실천하면서 살 것이다. 돈에 앞서 내 몸으로, 내 시간으로 실천할 것이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나는 좋다와 싫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 좋다.
내 아이들이 나의 삶의 열정과 노력과 실천을 직접 보면서, 그들의 삶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은 죽을 때 단 한번 평가 받는다고 한다. 그때는 내 이름이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존재이기를 바란다.
서기 2009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