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사람들이 능인선원을 알고 있고, 그런 분들에게 큰 충격과 아픔을 주게 될 것이 두려웠다.…”
나는 이 마음을 잘 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하찮은 이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스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버렸어야 할 부분이었을텐데, 아쉽기는 하다. 특히나 허위 학력 부분으로 협박을 받기까지 했다면, 용기를 내어 털어놓는 일을 미루지 말았으면 스님이 쌓아온 삶에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에게도 과분하게 나를 믿어주었던 많은 분들께 상처를 주는 것이 부끄러워 여기까지 왔는데, 이미 줄 상처 다 줬을텐데, 뭘 아등바등 애태우며 시간을 끌었을까 싶다. 버리자…
아래 원문 기사와 링크
허위 학력 고백 지광 스님 “용기 없어 털어놓지 못했다”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입력 : 2007.08.18 18:46 / 수정 : 2007.08.18 23:0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18/2007081800377.html
18일 오후 능인선원에서 지광스님이 자신의 학력 위조에 대한 심경을 피력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서울대와 신문기자 출신 스님’으로 알려졌던 서울 능인선원 원장 지광(智光) 스님이 자신의 학력은 ‘서울대 중퇴’가 아니라고 밝혔다.
지광 스님은 18일 오후 서울 포이동 능인선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울대(학부)를 입학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광 스님은 1984년 서울 서초동 상가에서 신도 7명으로 시작한 능인선원을 20여년만에 신도 25만명의 국내 최대 규모의 도시사찰로 성장시켰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처님께 참회드리고 저를 아는 많은 분들 마음을 아프게 한 데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1976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한 후 선배가 ‘서울대 중퇴라도 이력서에 적으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며 “그 동안 용기가 없어서 털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98년 방송통신대 영문학과에 입학해 2002년 졸업했으며 이후 동국대 대학원, 서울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과정 3학기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신도 단체 간부들도 일부 배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털어놓게 됐나?
“어떤 기회를 찾고 있었다. 과거에도 몇몇 신도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개적인 고백은) 다음 기회로 미뤄오다가 사회 정황이 이렇게 돼 먼저 언론사에 연락해 직접 이야기하게 됐다.”
-학력이 포교에 도움이 됐는가?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출가할 때부터 포교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신군부에 의해 신문사에서 강제해직된 후)피신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몸이 나빠져 서울 강남의 신도집에서 요양을 하다 불교가 너무 위축된 것 같아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일이 커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서울대 중퇴’ 학력으로 알려지게 됐나?
“한국일보 입사 후 이력서를 쓸 때 선배들이 ‘서울대 중퇴라고 적으라’고 한 것을 별 생각없이 따라 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1984년 말 서울에 포교당을 내면서 후배 기자들이 제가 잘못 쓴 이력서를 토대로 기사를 쓴 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불찰이었다. 과감하게, 용감하게 못했다.”
-신도들의 반응은?
“세속의 모든 것 버리고 출가했다. 언제든지 버릴 각오가 돼 있다. 지금까지 시체 1000구 이상을 치워왔다. 간부들은 그동안 많이 알고 있었다. 서울대는 동창회 명부도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도들이 ‘서울대 무슨과 나왔느냐’고 물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 용기가 부족했다. 포교를 계속할 지, 산중으로 들어갈 지 판단을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동안에 학력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는데 왜 털어놓지 않았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능인선원을 알고 있고, 그런 분들에게 큰 충격과 아픔을 주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과감해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가서 나이 60이 돼서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또 그동안 능인선원의 상황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게(학력문제) 협박의 재료가 됐다. 꾸준히 괴로움을 당해왔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마찰과 저항이 있고 파장이 크더라도 털어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사회 흐름으로도 성직자 입장에서 더 이상 늦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력을 확실히 밝혀달라.
“서울고를 21회로 졸업했다. 1969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방송통신대 영문과에 1998년에 입학해 2002년에 졸업했다. 그리고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 입학해 5학기만엔가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사를 받았다. 서울대 박사과정에는 2006년 봄에 입학해 3학기째이다.”
-이력서에 쓸 때 왜 ‘서울대’였고, ‘공대’였나?
“그냥 쓴 것이다. 사실 저는 고교때 문과였다. 한국일보 입사시험때도 고교 졸업장으로 봤다. 한국일보는 학력관계를 문제삼지 않았다. 합격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부처님께 감사한다.”
-출가과정을 밝혀달라.
“사미계는 1982년 도선사에서 받았다. 비구계는 시간이 없어서 1990년대에 통도사에서 받았다. 1984년말, 1985년초에 능인선원을 열었다.”
(한 여성신도 간부)
“저희에게도 책임이 있다. 우리는 먼저 알고 있었는데 신도들에게 스님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을 막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스님의 학력을 보고 온 것이 아니다. 스님의 법문과 기도원력을 보고왔다. 수행자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오늘부터 신도들도 참회기도에 들어갔다.”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거취도 생각하고 있나?
“부처님께 맡기고 항상 버리듯이 살아왔다. 죽음과 삶의 능선을 여러번 넘었다. 마음의 변화나 동요는 없다. 모든 걸 버리고 산에 들어와서 스님이 됐는데 학력이 문제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얼마나 버려야 하나, 어디를 간들 부처님 세상이고 부처님을 만날텐데… 당장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 참회하며 정진하며 살아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피신할 생각은 없다. 빨리 일을 물려줄 사람을 키우기 위해 학교를 짓고 있다. 빨리 되길 바라지만 이 일도 부처님께 맡기겠다.”
-국제신문 회장도 맡고 있다.
“국제신문은 제가 맡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가 손떼면 제호 내리고 문을 닫아야 한다. 힘겹게 유지하고 있는데 좋은 분 나타나면 모시려 생각 중이다. 이번일로 그분들이 위축될까 걱정이다. 그동안 자격지심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는지 모른다.”
(또다른 여성 신도 간부)
“능인선원 신도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똘똘 뭉쳐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
(지광 스님)
“마지막으로 저를 아셨던 많은 분들이 제 고백으로 마음 아프게 해 죄송스럽다. 또다른 삶 살아가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참회드린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