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를 신청하고 나서 마라톤 대회 전날이 되면 긴장감 때문에 숙면은 커녕 뒤치락거리다 새벽을 맞기 일쑤다. 대회 출발이 8시나 9시므로 준비를 하고 대회장에 미리 도착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므로 평소보다 일찍 자야 하는데, 긴잠감 때문에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니 좋은 몸상태로 끝까지 완주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어제 중마 완주로 올해 풀코스 대회는 다 뛰었다. 중마에서 낡은 아디다스 운동화 옆구리가 터지지 않았기 망정이지, 터졌더라면 목표 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년 3월 초의 동아마라톤을 위하여 맞춤 운동화를 주문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제의 기억을 되살려 목표 기록을 달성하면서 완주하게 된 소감을 써 보겠다.
풀코스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 과정은 대회 2주 전에 30~32km 거리주와 속도주를 해야 목표한 기록대에 완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2주 전에는 30km를 천천히 뛰는 것이고, 1주 전에는 대회 목표보다 살짝 빠르게 30km를 뛰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일주일을 탄수화물 축적을 위해 식단조절을 웬만큼 하면서 컨디션 조절을 이어가는 것이다.
한달 전인 국제관광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지만, 대회 주최측에서 1km 설치한 구간 표지판이 너무 거리차가 크게 나게 설치해 놓은데다 음료수 공급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참가자들의 원성이 높은 대회였다. 나 역시 패이스 유지에 실패한 데다 제때 물을 마시지 못해서 33km에서 퍼지고 말았다. 나 자신에 대한자책과 주최측에 대한 분개와 함께!
한달 후에 있는 중앙마라톤에서 설욕을 다짐하고 있었지만, 일정상 연습을 충분히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09/27(일) 국제관광마라톤 : 아디다스 신고 뛰었으나 33km에서 퍼져 겨우 4시간 안 완주.
10/04(일) 추석 연휴 : 시골 다녀옴. 풀코스 대비 운동 못함.
10/11(일) : 사패산&도봉산 산행. 풀코스 대비 운동 못함.
10/18(일) : 지리산 종주 산행. 22일(목) 다른 운동화 신고 10km 달렸으나 발에 물집 생김.
10/25(일) :중마 대비 30km 거리주. 또다른 운동화 역시 발에 물집 생기며 14km에 퍼짐.
11/01(일) : 신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유일한 선택은 낡은 아디다스 CS 와이드(단종됨).
대회 다음주가 추석 연휴라 거리주 훈련을 할 수 없었고, 그 다음 두 주는 지리산 종주와 종주 대비 산행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중앙마라톤 한주 전이 유일한 거리주와 속도주 훈련 기회였는데, 그마저도 신발이 맞지 않아서 도중에 중단하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신발 선택에 문제가 있을 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맞춤 신발을 주문했어야 했다. 주문하면 보름 걸리고 15만원 전후의 비용이 든다. 50%쯤 비싼 셈인데, 그 품질을 예측하기 어려워 미뤄뒀는데, 이렇게까지 맞는 운동화가 없을 줄이야… (내 발이 그렇게까지 유별난가?)
내 발에 맞는 신발은 오래 신어 옆이 터질 것 같은 “아디다스 CS Wide” 하나밖에 없는데, 낡아헤어져서 10km만 뛰는 목달에서는 다른 운동화를 신으면서 아껴(?) 왔다. 그 사이 목달, 산행, 목달에서 계속 물집이 이어지다 일주일 남겨놓은 30km 훈련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남겨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뛰었다가 더 심하게 물집이 덧나 버렸다. 훈련도 14km에서 중단하고…
별 수 없이 이틀 전의 목달에서는 이놈(아디다스)을 신고 뛰어보니, 확실히 물집도 안 잡히고 발이 편했다. 사소한 문제라면 한달 전에 이 신발을 신고 뛸 때 33km 지점에서 발바닥이 아픈 게 바닥이 너무 얇아서 선수들이나 신는 경주용 신발을 내가 덥석 신고 달려서 생긴 통증이 아닐까 싶은 염려가 있었다.
하루 전인 토요일이 되니 뜻밖의 일기예보가 나의 마음을 더 조리게 만들었다. (대회 하루 전인 토요일 연합뉴스의 기사 예보: 전국 비… 기온 ‘뚝’) 첫째로 아침 기온이 3도 정도로 쌀쌀할 거란다. 나는 긴팔 윗옷이 없는데? 둘째는 비가 올 거란다. 아디다스 CS는 바닥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는데, 빗물이 고여 있는 곳을 지나면 흙탕물에서 신발 안쪽으로 모래가 섞여들어오곤 한다. 쌀쌀한 날씨에 입고 뛸 긴팔 티도 없는데 비까지 오면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모래알은 어떻게 하라구… 앙~ 어쩌라구? 으으
요리 조리 궁리해 봐도 도무지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러면 밤잠마저 못 잘 것 같고, 그래도 마지막 대회이니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3:40에 도전해야 한다. 기회는 더 없다. 이미 두 달 전에 내기까지 한 터라, 어떻게든 해내고 싶은데, 여건이 너무 안 좋다. 준비를 제대로 못한 이유 때문에 이처럼 막다른 궁지까지 몰린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남은 선택은 딱 한 가지.
비가 오든 추위에 떨든 모래알이 신발 안으로 들어와 신발을 몇 번이고 고쳐 신든, 30km 이후부터 엄습할 극한의 고통과 죽기 살기로 싸워 이겨내는 길밖에는!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토요일 밤을 최대한 푹 자고, 적당히 일찍 일어나 가볍게 아침 먹고 씻고 발과 다리에 테이핑을 하고 대회 장소로 가는 것뿐이다. 이제는 잘 자기라도 해야 한다. 정지안신환 덕분에 그래도 충분히 자지는 못했지만 3시간 반 정도는 숙면을 한 것 같다. 준비하고 대회 장소로 이동. 모임 시간에 딱 맞춰 도착. 출발 대기자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
오늘 패이스 전략은 km당 5분 10초이므로 손목시계의 반복 알람을 5분 10초로 설정했다. 3시간 38분에 골인할 수 있는 패이스다. 30km 후반에 2분만 머뭇거리거나 퍼지면 340 목표 달성에 실패한다. 그렇다고 전반부에 무리하면 지난 대회처럼 30km 후반에 퍼진다. 최대한 패이스 안배를 잘 해서 35km 지점까지는 평균 패이스로 통과하고 그 이후 7.2km에서 정신력으로 승부를 건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3:40 패이스 메이커 뒤에 서서 출발한다. 참가자가 많다 보니 3:40 패이스 메이커에 딱 붙어서 달리는데도 2km까지는 5분 30초 패이스로 통과하는 것 같다. 5km까지 이대로 갈지 좀더 일찍 평균 패이스로 나설지 고민하다, 2.5km 지점부터 3:40 패이스 메이커를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3~4km 지점을 통과할 때 손목시계의 스톱워치를 보니 5’10” 패이스로 달리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5km 지점을 통과하면서 물 한 컵을 달리면서 마셔 주고, 패이스가 안정이 됐다는 느낌에, 2km 지점까지 까먹은 40~50초를 보충하기 위하여 살짝 패이스를 올리면서 10km 통과할 때의 누적 패이스를 5’10″에 맞추기로 마음 먹었다. 10km 통과하면서 물 한 컵 마셔주고 패이스로 마음 먹은대로 운영되고 있어서 일단 4분의 1은 잘 해냈다는 생각을 하면서 걱정보다 자신감과 각오를 다지며 뛰었다.
12km쯤 지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무리의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며 뒤에서 오는 줄 알았던 3:40 패이스 메이커가 앞으로 치고 나간다. 순간 내가 패이스를 잃었나 확인해 보았지만, 아니었다. 가벼운 내리막 경사로가 길게 뻗어 있는 길이었다. 아하, 돌아올 때 늦어질 걸 대비하여 내리막일 때 미리 시간을 조금 벌어두는 전략이구나 싶었다. 좋은 전략이군! 나도 패이스를 올려서 따라 붙었다. 그런데 3:40 패이스 메이커와 함께 뛰면 안 된다. 3:37이나 3:35를 할 수도 있는 계획으로 달려야 장거리 훈련을 안 해서 후반부에 쳐질 때의 지체 시간을 미리 벌어둘 수 있는 것 아닌가? 13km부터는 3:40 패메를 앞서 나갔다. 그러다 보니 15km부터는 다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어이쿠, 벌써부터 다리 근육에 무리가 오면 안 되는데… 얼마나 힘든 고통과 대면하게 될까 조금 두려워진다.그래, 이럴 땐 반대로 피치를 가하라고 하셨지? 힘든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조금 더 패이스를 올렸다. 15km부터는 이온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힘겹게 달리고 있는데 앞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미안한 생각이지만 짜증이 난다. 펀런하려면 동네 가서 하든지… 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앞지르는 길밖에 없겠다.
멀리 20km 지점이 보인다. 앞 조의 3:40 패메가 20m쯤 앞에 보이는데, 바짝 따라붙기는 버거워 보인다. 일단 파워젤 하나 먹어 주고 탄수화물 연료 보충! 헛 참, 그런데 이번에는 영어로 떠드는 사람이 생겼다. 아까보다 더 짜증이 난다. 작은 소리로 얘기하지, 다른 달림이들 생각은 안 하나? 나 자신이 달릴 때 옆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는 소리에 왜 그리 짜증이 나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래, 저 앞의 앞조 3:40 패메를 따라붙자. 힘들다. 25km 반환점이 뭐 이리 머나? 그래도 25km만 통과하고 나면 15km 남짓 달리면 골인한다. 할 수 있다!
앞서 달린 기로빅스 회원들이 지나가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할 만큼 꽤 힘겨웠어도 25km 통과할 때까지는 평균 패이스보다 빠르게 뛰었다. 30km 지점을 눈앞에 두고 두번째 파워젤을 먹어준다. 내 몸에 힘과 의지력도 재충전되면 좋겠다. 급수대까지 뛰는데 재충전 안 된다. 이온 음료를 한 컵 들이 마시고 숨은 깊이 들이쉬고는 두 팔을 벌려 소리를 질러본다. “이~얏!” 급수대에서 도우미를 하던 학생들이 내가 지른 소리에 놀란다. 애구, 조금 벗어나서 기합을 넣을 걸 그랬나?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니 놀란 얼굴들이 다시 까르르 웃어 넘어간다. 내 하는 짓이 그래 웃기나? 자신을 챙길 여유 따위는 소진된 지 오래다. 제발 남은 10여 km를 달려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기만 한다면! 고통으로 감겨오는 눈을 다시 부릅뜨고 의지를 새롭게 하며 패이스를 끌어올리려 애쓰며 달렸다.
한달 전 엉터리 대회에서 33km 지점에서 퍼졌기 때문에, 33km 팻말을 넘어 35km 지점까지는 기를 쓰고 달렸다. 도중에 긴 언덕도 있고 패이스도 쳐지고 힘에 부친다. 이러다 나도 몰래 걷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35km 지점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세번째 파워젤을 먹었다. 이제 7km 남았다. 양재천 10km만큼도 안남았다. 걷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약해지지 말자. 이온 음료를 마시고 급수대에서 조금 벗어나 소리를 다시 질러 보는데, 힘이 없다. 이번에 나오는 언덕은 더 가파른 것 같다. 헥헥대며 겨우 오른다. 마지막 언덕이겠지 싶은데, 패이스가 너무 쳐져 있다. 왼발 엄지 뿌리쪽 물집은 꽤 아픈데, 두 발바닥 가운데와 왼발 종아리 근육은 테이핑 덕분인지 큰 문제 없어 보인다. 이런 비법을 이제야 알게 되어 아쉽지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걷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한 사람이 쓰러져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나도 저렇게 될까 걱정이 된다. 저기 멀리 모퉁이를 돌면 40km 지점이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패이스가 너무 쳐졌는지, 내가 함께 출발한 조의 3:40 패이스 메이커가 휙 앞질러 간다. 아니, 이게 웬일이래? 내가 여유 있게 3:40보다는 앞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30km 이후에 너무 지쳐서 3:40 패메마저 저만큼 앞서 달리고 있다. 안 되는데… 3:40만큼은 해야 하는데? 따라 붙어야 하는데 힘이 없다. 다리가 너무 무겁다. 자칫하면 다리에 지가 내릴 것같은 통증마저 간간이 느껴진다. 40km를 달려와 마지막 2.2km를 남겨놓고 정신을 놓아 3:40을 못하게 된 장면이 눈앞을 스친다. 겨우 40초~1분 남짓한 차이로… 3시간 40분 55초… 누가 그렇다고 3:40이라고 인정해 주나? 아냐, 이건 아냐!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쥐 나서 뻗기 외 더하랴? 매주 목달에서 1km 남겨두고 인터벌 하던 거 아주 조금 더 한다 생각하자. 네박자 호흡을 세박자 호흡으로 바꾸고 눈 질끈 감고 팔굼치로 핏치를 올려 본다. 100m쯤 달려 보니 견딜만 하다. 3:40 패메를 앞지를 수도 있겠다. 계속 이대로 달리자. 3:40 패메를 제끼자 마자 41.195라는 팻말이 있다. 순간 손목시계의 랩타임 버튼을 누르고 진짜 1km 남은 스퍼트를 시작했다. 조금 전에 달려온 1km는 잊었다. 오로지 지금 남은 1km에서 3:40 하느냐 못하느냐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온몸에 남아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달렸다. 잉? 그런 나를 누군가 한 명이 추월한다. 이런… 좀 달린다는 사람인가 보다. 무슨 마라톤 클럽이라 써 있는데, 어디 끝까지 누가 먼저 골인하나 보자. 그 사람이 5m쯤 앞서 가고 있는데, 간격이 줄지를 않는다. 아주 끝까지 사람을 쥑일 작정인가 보다. 해 보자, 어디!
골인 지점인 잠실운동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제 두박자 호흡으로 바꾼다. 것 봐. 내가 제낀다 했지ㅎㅎ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앞서가던 사람을 첫번째 직선 코스에서 제꼈다. 힘이 솟는다. 모퉁이를 돌아 마지막 100m 표시가 바닥에 있다. 더 크게 숨을 들이쉬고 가슴이 터져라 있는 힘껏 속도를 올려 골인 지점을 통과하면서 내 손목시계를 보니 3시간 38분 10초. 공식 기록은 9초. 아~ 해 냈구나! 불가능하게 보일 때 포기하지 말고 더 큰 용기와 인내력을 쏟아내면 역전도 가능하구나! 지금 내 처지를 예견해 보이는 것 같은 42.195km의 풀코스를 목표한 시간 안에 들어오며 감사히 마쳤다. 끝까지 견뎌준 내 다리와 운동화에게 감사를 전하며, 우리를 응원하는 동료들이 있는 기로빅스 자리의 스탠드로 걸어가 축하 인사를 받았다. 힘들었지만 정말 대단한 레이스였다. 다들 너무 고맙다.
성명 | 코스 | 배번호 | 전체 순위 |
10km | 20km | 30km | 40km | 완주 (Net) |
박흥호 | 풀 | 11010 | 1,989 | 0:51:39 | 1:42:19 | 2:33:17 | 3:27:20 | 3:38:09 |
패이스 | /km | 5’09 | 5’07” | 5’07” | 5’11” | 5’10” | ||
구간 | => | 0:51:39 | 0:50:40 | 0:50:58 | 0:54:03 | 0:10:49 | ||
패이스 | /km | 5’09 | 5’04” | 5’06” | 5’24” | 4’56” |